2010_02_23_am1.txt
누군가에 의해 게으른 인간으로 내가 정의된 이래,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상대적인간이라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이란 것이 원래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자에게 받는 영향을 무시 못하는게 사실이다. 더불어 원래 나약했던 내 본질도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지 않은 자들과 비교당할때마다 뼈를 깎는 심리적 고통이 휩쓸고 지나가지만 이 또한 나는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그저 짓누르고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 초월할 수 있는 날은 대체 언제나 올 수 있는 것일까. 본질이 바뀔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매일밤 고민해보아도 행동으로 옮겨 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당장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포기해왔다. ‘난 원래 그런 인간인가 보다.’ 하고.
하지만 진정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생겨나면서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해야될지 걱정이 된다. ‘너는 하지 못할 것들이야.’,’네가 하지 않아도 잘할 사람은 많아.’ 따위의 말들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잘할 수 있다, 잘 하고 있다, 스스로 용기를 불어 넣고 있지만, 언제까지 갈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내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포기 말고 좀 더 끈질기게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_02_22_am12.txt
개같은 내인생 - 유용주
숨 넘어갈 때까지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침 뱉어버린 우물에서
새벽 찬물을 떠 달게 마신 적이 있었다
그대가 나를 버려도 좋으니
내가 그대를 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운 적이 많았다
병든 다음에는 태어난 걸 저주하면서도
죽음 직전에 서면 늘
살려고 발버둥쳤다
너무 맑게 개어 기침이 나올 것 같은 하늘 아래
흙이라도 파먹고 싶을 때가 많았다
산이라도 떠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BLACK SWAN (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내게 레퀴엠의 감독으로 각인 되어있었다. (사실 더 레슬러를 포함해 그의 작품은 몇몇 접했지만 레퀴엠만큼 강렬했던 작품은 없었다. 더 레슬러 보고 펑펑 울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공 시간에 제출할 시나리오를 결국 쓰지 못한채 터덜터덜 향했던 영상자료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꺼내든 DVD가 바로 레퀴엠이었다.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그 DVD 기숙사에 몰래 가지고 와서 몇일 동안 돌려봤었다. 한 참 후, 놓고 나오는 길에 사서 선생님이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는 말에 움찔했던 기억도 덧붙여.
화려한 영상과 당시 나로서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소재들로 가득했었다. 세상이 정한 아름다움과 사랑 그리고 쾌락 이면에 비쳐지는 고통과 허무 그리고 죽음. 너무나도 강렬히 대비되는 빛과 암흑. 항상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각성해야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1년, (사실 2010년에 미국에선 이미 개봉했던 작품.) <블랙스완> 이 작품으로 모두의 마틸다 나탈리 포트만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선 2월 24일에 개봉한다지만 조바심에 난 조금 서둘러 자막 없이 (돈 냈음) 블랙스완을 감상했다.
몇 년이 지난 아직도 내 머릿속을 울리는 한 문장이 있다.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뱉어졌을때 나는 너무 부끄럽기 그지 없었던 기억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불쾌한 진실도 진실이기에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각성하라 일러주는 단 한 사람의 무려 6년전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말이 떠올랐다. 완벽한 백조와 흑조를 연기했던 니나의 진실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상에 결국 자신을 파괴시킨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이었다. 자해하고 정신 착란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옥죄여 오는 불안감에 흡수 되며까지 완벽한 무대위의 주인공이 되는 니나의 영화를 지켜보면서 ‘ARTIST’라고 불리는 애매모호한 그 집단들 사이에서 영화 전반에 걸친 니나의 광기를 당연하다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약간의 걱정이 생겼다. 혹여나 니나의 광기가 ART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적어도 극중에서 니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했고 고독하게 자신과 싸워왔으니까 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렇게 ‘몰입’했기에 스스로 마지막엔 완벽함을 연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아티스트는 말이야..”하고 운을 떼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 전반에서 ‘내면의 광기를 끄집어 낸 아티스트’를 그린 것은 사실이지만, 아티스트의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몰입 그리고 실력의 향상을 위한 노력이 스스로를 최고와 완벽함으로 이끌었다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함께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야 아티스트 축에도 못낄 뿐더러 아트가 아직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니 함부러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영화 내내 혹여나, 하는 마음이 든 건 기우에 불과 했으면.
꽤 오랜만에 길다면 길었던 라이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온 다리가 쑤시고 아파 잠이 오질 않는다. 나도 극중 니나처럼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오늘 밤 잠은 또 멀리멀리 길을 떠났나보다.
2011_02_13_pm11.txt
p.200::두 시간을 기다려 5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얘기했었다. 그런 걸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꼭 타고 가야지, 그런 심리가 되는 거지. 두 시간 줄서서 5분 열차, 두 시간 줄서서 5분 회전바퀴, 두 시간 줄서서 5분 바이킹…우와, 거의 하루인 걸. 한적한 느낌의 참으로 시시한 회전 커피 잔에 앉아 나는 생각했었다. 누구나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11_02_12_pm5.txt
의지가 충동을 조절 할 수 있기를.
2011_02_08.txt
소망이 불현듯 눈 앞에 나타났을때 당혹감이란 이루말할 수 없다. 심지어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것이었다 한들, 갑자기 순식간에 모든 것이 해결되고 내 것이 되었을때의 허무함. 어쩌면 예전의 나는 이런 상황에서 기뻐 날 뛰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모든 것이 혹여나 ‘내탓’이 될까봐 의심의 눈초리로 두려워하고 있다.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아닌지. 의식하지 못하는 그 사소한 찰나 모든 것이 끝나고 시작되었다. 메를로-퐁티의 어구에서 위안을 얻어보지만 충족되지 못하는 이 마음. 넋을 놓고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주저하다 풀어놓는다.
2011.02.05 pm8:30
이 사진을 보고 perm을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중.
2011.02.02 pm7
영화를 한편 볼까 하고 상암 CGV로 몸을 옮겼다.
(현재 왼쪽팔 깁스에 왼쪽 발목이 온전치 않은 상태가 옮겼다는 표현이 맞겠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옹기종기 영화를 보러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보니,
영화를 보자했던 마음도 싹 사라졌다. 아이엠러브 봐야 되는데..
무튼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홈플러스를 둘러보다가
전기주전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실 싼것도 많았는데, 왜그런지 모르겠으나 요놈
자꾸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보채는 것 같았다. 새끼. 나처럼 외롭구나.
혼자 중얼거리다 데리고 왔다. 흠 사실 가격때문에 좀 후회가 되긴 하지만…
커피나 한잔 타서 마셔야겠다. 반갑다 전기주전자야.